무제

심볼리크리스에스x네즈오 유미 

서사가 너무 없어서 뭐라도 썼음

보리크리 개인스토리 4화까지 읽으시면 이해가 됩니다

 

사실 일본 레이스계 따위 어찌 되든 좋았다.

아니, 어찌 되면 안 되지 내 일자린데. 그치만 솔직히 너무 스케일이 커서 잘 와닿지 않는다. 애시당초 나는 레이스계보다는 우마무스메라는 종족을 더 좋아하고... 아니, 이게 아냐. 어쨌든 현대의 우마무스메들이 자기 본질을 마음껏 드러내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란 바로 레이스장이니, 나도 그녀들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이곳에 있을 뿐이다. 오히려 뇌리에 깊게 박힌 건, 네 어린 시절 이야기였다. 몸이 약하고 대화가 서툰 탓에, 원하는 걸 말하지 못했고... 그런 자신을 이해해 줄 사람 하나 없었던 너. 그런 네 방식을 있는 그대로 긍정해 주었던-단 하나의 이해자였던 스승님. 그에게 입은 은혜를 갚기 위해 이 먼 타지 땅에서 남의 사명을 자신의 사명처럼 받들고 있는 자가 바로 심볼리 크리스 에스라는 우마무스메다.

 

이야기를 들으며 그녀가 처한 상황과 감정을 깊게 이해하고 있는 내가 있었고(은혜를 갚겠다는 대목에선 그녀처럼 이타적이지 못해 공감할 순 없었지만), 이해자라는 존재가 대체 뭐길래? 소원까지 이뤄주고 싶을 만큼 대단한가? 하며 삐딱선을 타는 내가 있었다. 당연하지. 나는 그런 사람 못 만나봤으니까!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중에서도 은연중에 그녀의 그 필사적인 소망을 이뤄주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가 있었는데...... 아니 잠깐. 내가 뭘 할수 있는데? 이미 그녀를 점찍은 걸출한 선배들이 줄을 섰고, 나는 트레이너 선발에도 나가지 않은 일개 신입 트레이너일 뿐이다. 솔직히 전속 트레이너라니, 진짜 급에 안 맞는 일이잖아. 팀 서브 트레이너로 월급이나 받아먹을 생각 아니었냐고. 현실을 생각해라, 네즈오 유미.

꿈을 함께 이뤄 나갈 일심동체의 파트너란 말, 이곳에선 무슨 마법의 주문처럼 남용되곤 한다. 그렇지만 실제로 그런 파트너를 만나서 꿈을 이루는 우마무스메가 얼마나 되던가? 전설이 된 자들의 영웅담은 까마득히 멀리서 빛나는 별이지만, 계약 해지와 팀 해체는 매일 자욱하게 덮여오는 흙먼지처럼 가깝다. 그래, 현실은 녹록치 않은 법. 결국은 모두 혼자가 되어 홀로 고군분투하며 살아간다. 그런 팍팍한 인생에 덕질거리가 한 줄기 낙이 되어 주니 내일을 버텨낼 원동력을 얻을 뿐. 운 좋게 직업과 덕질적 흥미가 맞는다면 그건 나름대로 성공한 인생 아니냐. 저런 거창한 암벽을 굳이 등반할 필요는 없어. 그러니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여 줄 사람은 존재할 수 없다'. 너도 살면서 겪어봐서 알잖아? 그런 네가 남을 온전히 긍정할 수 있다는 거야? 말도 안되는 소리.

 

그래, 나도 분명 그렇게 생각했지. 그렇지만 밤 하늘 아래서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그 진중한 눈을 마주하는 순간-무슨 개같은 마법적인 힘이 작용했음이 틀림없다-분명 나는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건너기로 결심했던 거다. 그렇잖고서야 내가 지금 남들 다 보는 데서, 홀린 듯이 네 이름 다섯 글자를 부르고 있을 리가 없으니까. 

그날 밤, 나는 너를 '이해하고' 말았거든. 아마 그게 내 인생 최대의...